일년 전에 나름 괜찮다는 브랜드 칼을 샀었다.

누구나 알만한, 어디서 싸구려 칼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식칼을 할인가에 저렴하게 샀다.

처음에는 신경이 곤두설정도로 정도로 예리해서 한동안은 다룰 때마다 조심했지만,

시간이 흘러 닭고기를 써는데 손목으로 힘을 주고 체중으로 눌러야만 자를 정도로 칼이 무뎌졌다.

 

육개월 전, 닭다리에서 살을 바르다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숫돌을 주문했다.

예전에 요리를 배울 때 혼자 숫돌에 칼을 갈곤 했었는데 이미 10년도 넘어서 순서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유튜브에서 칼 가는 법을 검색하고 천천히 따라해보았다.

 

숫돌을 물에 적시고, 칼을 조금 세워서 앞 뒤로 슥슥, 뒤집어서 슥슥...

그러나 아무리 갈아도 날이 예리해지지 않았고, 중간중간 이가 나간 부분도 그대로였다.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어떤 강도로 해야 할 지 몰라서 짜증이 치솟았다.

어쩌라는거지? 왜 지금은 안되는거지? 칼이 문제인가, 아님 돌이 싸구려인가.

알바하는 가게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하는 걸 봤을 때는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던데.

칼을 왜 이렇게 빨리 이가 나가게 만든거야. 아니면 내가 잘못된 영상을 찾은건가.

 

좀 더 갈아볼까, 하다가, 아 모르겠다, 이따가 하자, 하고 옆으로 치워두었다.

 

...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숫돌은 싱크대에서 선반으로, 선반에서 찬장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번에 느낀 그 좌절감과 짜증이, 숫돌을 볼 때마다 되살아났다.

날은 점점 무뎌져서 토마토를 썰면 토마토 껍데기가 잘리는건지 찢어지는건지 모호할 정도였다.

 

예리한 칼보다 무딘 칼이 훨씬 위험하다. 무딘 칼일수록 힘을 주다가, 자칫 엇나가면 손을 깊게 베기 때문이다.

그 쯤부터, 막연히 '아, 정말로 이건 안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다였다.

 

...

 

요 근래에는 애인이 나에게 매일 잡채를 해달라고 타령을 했다.

(나는 지금 애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중이라,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무딘 칼로 소고기와 당근을 매일같이 썰다 보니, 자칫하면 어느 날 내 손가락이 잡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는 고기 써는데 손목이 너무 아파서 울음이 터졌는데, 애인이 놀라더니 그 뒤로는 대신 썰어주었다.

 

며칠 전이었다. 식사 후 느긋하게 부엌을 정리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고 찬장을 뒤지다가, 숫돌과 눈이 마주쳤다.

만지면 푸스스하고 부서질 것 처럼 바짝 말라서는 정돈되지 않은 비닐봉투들과 정답게 뒹굴고 있었다.

오후 두 시, 부엌에는 볕이 들어오고 있고, 창문 밖으로는 나무들이 광합성을 하고, 바람에 맞춰 담쟁이 덩쿨이 흔들렸다.

애인은 자기 방에서 뭔가를 꼼지락거리고 있고, 나는 할 일도 딱히 없었다.

그래 뭐, 하고 가벼운 결심을 했다.

 

행주에 물을 적시고, 그 위에 숫돌을 올리고, 수도꼭지를 숫돌 위로 올려 물을 졸졸졸 틀었다.

칼 가는 법이 아니라, 넷플릭스 드라마를 틀었다.

마치 주기적으로 칼을 갈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어느정도 물이 흡수 된 숫돌 위에 칼을 올리고, 사선으로 슥슥 갈기 시작했다.

저번과 똑같았다. 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또, 계속 갈았다. 여전히 비슷했다.

 

보던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만 해봐야지, 하고 아무 생각없이 계속 갈다가

햇볕에 날을 비춰보니, 날의 중간 부분의 날이 다른부분보다 살짝 더 누워있었다.

 

'아 되고 있다' 라는 확신이 들어서

칼을 갈고, 날을 확인하고, 다시 갈고, 볕에 비춰보기를 반복했더니

날이 조금씩 칼 등쪽으로 녹듯이 갈려 들어갔고, 군데군데 이가 나간 부분이 사라져서 결국에는 일자로 반듯해졌다.

칼날을 손가락 지문에 긁어보았더니 지문의 오돌도돌함에 맞춰 도도독 하고 긁히는 느낌이 났다.

 

숫돌을 뒤집었다.

사포도 종류가 다르듯이, 숫돌도 거칠기가 모두 다르다. 내가 산 숫돌은 양 면이 다른 거칠기로 되어있다.

그래서 숫자가 낮고 거친 부분으로 갈다가, 날이 어느정도 서면 숫자가 높고 고운 부분으로 더욱 예리하게 다듬는 식으로 날을 세우면 된다.

이 때부터는 드라마 소리를 낮추고 살짝 긴장했다. 여차해서 손가락 끝이 칼 밖으로 나가면 예쁘게 포가 떠질까봐 무서웠다.

 

한 10분여를 앞뒤로 긴장해서 삭삭 갈고 난 뒤,

흐르는 물에 칼을 씻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오렌지를 꺼냈다.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보려면 오렌지 제스트를 만들어 보면 안다고 배운 적이 있다.

오렌지 제스트란, 오렌지 껍질에서 아주 바깥의 주황색 부분만 얇게 포를 떠서 다시 얇게 썬 것을 말한다. 

그걸 시럽과 섞어서 케이크나 과자위에 장식하기도 하고, 크레페에 얹어 오렌지의 향긋함을 더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래서 오렌지의 한쪽 껍데기를 잘라서 얇게 포를 뜨기 시작했다.

너무 오랫동안 무딘 칼을 써서 그랬는지 힘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손을 거의 벨 뻔 했다.

그리고 돌돌 말아서 채를 썰었더니...

 

아, 그래, 칼은 이래야지. 이렇게 썰리는 게 칼이지, 하는 만족감이 몰려왔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눈을 감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이웃이 나를 보면 저 사람 왜 저래, 싶었겠지? 

 

당근도 썰어보았는데,

사각사각하며 칼이 들어가는 소리가 정말 경쾌하게, 드디어 내가 원하는 만큼 얇게 썰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썰었던 제일 얇은 당근이 무생채였다면, 날이 선 칼로 썬 당근은 소면처럼 얇고 청순하게 반투명했다.

뿌듯했다. 내가 썰고싶었던 채는 바로 이거였다고.

 

내친김에 과도도 갈아보았는데, 웬걸, 한 번 해봤다고 이렇게 쉬울줄이야?

뭐지 싶을 정도로 너무 자연스럽게, 빠르게, 제대로 칼이 갈렸다.

하긴 한 때는 할 줄 알았던 일이니까, 할 줄 모르는게 아니라 하기 싫었던 게 문제였을 것이다.

 

주방을 정리하고, 허브티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 쉬운걸 하는데 왜 그렇게 짜증이 나고 하기 싫었을까?

6개월 전의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졸린데도 잠에 들지 못해 짜증내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 때의 나는 그런 집중을 감당할 정신적 능력 자체가 없었던거겠지.

 

과장 섞어서, 중세 시대에 태어났으면 귀찮아서 그냥 쓰다가 손을 베고, 대충 방치하다가 패혈증에 걸려서 팔 한 쪽을 잘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약이 발달된 시대에 태어나서 집중력 약도 처방받고 다치면 소독도 할 수 있으니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칼을 간 이후로 요리가 3포인트 정도 즐거워졌다.

손목이 아프지도 않고, 야채가 사각사각 썰리는 감각에서 쾌감마저 든다.

애인이 잡채를 해달라고 하면 귀찮긴 하면서도 신난다.

 

해야 하는 일들에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이런 날들이 앞으로 더 많았으면 좋겠다.

소소하지만 간직해두고 싶은 일상의 경험을, 장문쓰기 연습 겸 적어보았다.

 

 

9월 20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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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알바하던 가게 일본인 아저씨가 과자 한 봉지를 주셨는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그 봉지를 버리지 않고 오래 간직했던 기억이 난다.

적당한 버터의 향, 적당히 입안에서 파스라지는 느낌, 적당한 당도... 모든것이 딱 적당했다.

얼마나 향긋했는지, 햄스터도 산책하던 중 갑자기 달려가더니 아무것도 없는 봉투 안에 들어가서 한참을 바스락거리며 미련을 부렸다.

 

어쨌든, 그래서 그 가게를 가야지 하면서도 너무 멀어서 미루고 미뤘다가

오늘 단톡방에서 그 동네의 빵집 얘기가 나왔는데,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가게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 괴로웎다.

그래서 두뇌를 풀가동해보았더니, 희미하게 노란 로고에 새가 있었다는 것이 기억이 났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본인 제과점이 아니라 독일 제과점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그 과자를 팔고 있다.

 

그 얘기를 하다가 맛있는 맥추도 추천받았다.

 

아아, 너무 행복하다. 다시 사러가야지.

이것이 인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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